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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귀화이유 빙상연맹 파벌 정리 한체대 비한체대







1990년대 - 2002년 10월 -전명규 감독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


전명규 감독은 남,여팀 모두를 맡았으며 우리나라 쇼트트랙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감독

남자, 여자할 것 없이 구타를 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성적이 좋아 그냥 묵인되었다.

철저한 팀 플레이를 기반으로 금메달을 특정 선수에게 몰아주기 방식의 플레이를 고집

잘 하는 선수가 치고 나가면 나머지 선수들은 뒤에서 길막을 해주는 형태..

희생당하는 선수들의 불만과 반발이 커지면서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 구도가 생김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전명규 감독을 물러났고

이후 전명규 감독은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를 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전규명파=한체대파 vs 비전규명파=비한체대파가 된다.



2003년 - 2004년 김기훈/이준호/김소희/최광복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안현수 vs 비안현수)]


이 시기부터 남자팀, 여자팀 코치가 분리된다.

남자팀은 김기훈 코치가 맡게 되었고, 여자팀은 이준호 코치가 맡게된다.

김기훈 코치는 전명규 감독이 키운 선수로써 전명규파다. 김기훈 코치는 이 시기에

안현수 선수를 발굴하여 키웠으며 소문에 의하면 안현수 선수에게만 노하을 전수하는 등

애정을 보였으며, 이러한 애정은 다른 선수들에게 안현수를 밉보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003년 6월 여자팀 코치가 이준호 코치에서 김소희, 최광복 코치로 바뀌게 되는데 이들은 비전명규파이다.



2004년 - 2005년 윤재명/김소희/최광복/박세우/전재수/김기훈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 코치쟁탈전]

김기훈 코치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스케이트날을 구입하라고 선수들에게 강요하곤 했는데

이러한 비리가 알려지면서 2004년 10월 사퇴 하게 되고, 이후 윤재명 감독이 남자팀을 맡게 된다.

윤재명 감독은 비전명규파.. 이로써 남자팀 여자팀 모두 감독 및 코치가 비전명규파로 이루어 진다.

윤재명 감독 부임 다음날 여자팀 구타파문사건이 일어나는데, 최은경 선수가 구타사건을 폭로하고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자팀을 맡고 있던 김소희, 최광복 코치가 물러나고, 전명규파 박세우, 전재수 코치가 여자팀을 맡게 된다.

이로써 비전명규파 천하는 한달만에 끝이나고 남자팀은 비전명규파, 여자팀은 전명규파가 맡게된다.

소문에 의하면 전명규 교수의 제자이자 맏언니였던 최은경 선수가 모든 코치가 비전규명파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

구타사건을 알린것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소문일뿐 들어난 사실은 없다.

2005년 1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구타파문이 일어나게 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윤재명 감독이 물러나고 

김기훈 전 남자팀 코치가 재부임하게 된다. 이로써 남자팀 여자팀 모두를 전규명파가 맡게된다.



2005년 - 2006년 김기훈/박세우/전재수/송재근/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


김기훈 코치가 올림픽 남자팀 코치로 결정되자 비안현수파 선수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선수만 편애하고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코치 밑에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며 선수촌 입촌 거부를 한다.

이를 계기로 김기훈 코치는 사임하게 되고, 이후 박세우 코치가 남자팀을 맡게된다.

2005년 7월 올림픽을 앞두고 감독이 필요했던 빙상연맹은 윤재명 감독을 다시 기용하려 했으나

안현수, 최은경, 강윤미 선수와 부모님 그리고 박세우, 전재수 코치가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입장을 표명한다.

이를 이유로 빙상연맹은 전재수 코치에게 퇴진을 요구하였고 전재수 코치는 해임된다.

안현수, 최은경, 강윤미 선수와 부모님 그리고 박세우 코치는 전재수 코치 해임에 반발하여 전지훈련을 거부한다.

하지만 남자팀 코치는 비전명규파 송재근 코치가 맡게 되고, 안현수 선수는 캐나다 이민을 고려하지만 이때부터 

남자팀에서 훈련을 하지 않고 박세우 코치를 따라 여자팀과 함께 훈련을 받는다.

2005년 11월 월드컵에서 박세우 코치는 중국에게 져도 좋으니 나의 지도를 거부한 진선유를 막으라는 명령을 하게 되고 선수들은 

실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실행한 선수 중 한명인 변천사 선수는 회의를 느끼고 남자팀으로 옮겨서 훈련을 하게된다.



2006년 2월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에이스 밀어주기가 거의 없는 쇼트트랙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이어지게된다. 하지만 같은 파벌의 선수들끼리만 축하해 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보여지면서

만천하에 한체대 vs 비한체대 파벌의 존재가 들어나게된다. 


2006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파벌문제가 더욱 심각해져서 비행기 좌석, 숙소까지 바꿀정도가 되었으며,

경기중 우리나라 선수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카메라에 비춰질 정도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입국장에서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와 빙상연맹 부회장과의 대화에서 고성이 오가며 더 주목받게 된다.

'애가 오죽하면 매일 울면서 전화를 해요. 힘들어서 운동 못하겠다고...' 

'1000m와 3000m에서 코치의 지시로 다른 파벌선수들이 안현수 선수를 막게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이다.

외국 선수들도 이 날 경기에 대해서 한국 선수들이 왜 안현수를 그렇게 막으려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결국 파벌 관련하여 진상조사위원회가 준비되었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2007년 안현수 선수는 한체대 졸업 이후 한체대 대학원 진학을 요구하는 전명규 교수의 바람과는 달리 

당시 계약금 2억을 포함하여 3년간 총 5억원에 이르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성남시청에 입단하게 된다.

안현수 선수는 한체대 대학원 진학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한체대파와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비한체대파(비안현수파)는 물론 한체대파 에게도 척을 지게 된다.


2008년 안현수 선수 무릎부상


2010년 이정수 선수가 벤쿠버올림픽 1500m 금메달을 따던 날 전재목 코치는 이정수 선수에게 곽윤기 선수에게 

올림픽1000m를 양보하거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하라는 강압을 하고, 이정수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곽윤기 선수에게 양보하게 된다.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이후 안현수 선수 아버지는 안현수 선수 팬카페에 

곽윤기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게 된 것에 대해 의문글을 올린다.이를 계기로 이 사건이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고 

전재목 코치는 영구제명, 이정수 선수와 곽윤기 선수는 스포츠쉽을 이유로 6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된다.



2010년 12월 30일 안현수 선수가 몸 담고 있던 성남시청은 재정악화로 인해 팀이 해체된다. 

2008년 부상 이후 성적을 내지 못했던 안현수 선수는 이미 빙상 계열에서 퇴물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다른 지역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오지 않았다. 국가대표로 뽑히면 어느 팀이든 연락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무런 지원없는 상황에서 4개월간 훈련했으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선발되지 못했다.

이후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의 나라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으며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로 귀화를 결정하게 된다.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에이스 밀어주기 방식을 고수하던 전명규 감독은 한국을 쇼트트랙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에이스를 위해 희생하는 선수들의 불만을 샀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겉으로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가 있었다. 2002년 성적부진을 이유로 전명규 감독이 해임 되면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전명규파 vs 비전명규파는 한체대 vs 비한체대 구도로 바뀌게 된다.




90년대 - 2002년 10월 전명규




이때부터 남자팀, 여자팀 코치가 분리되는데, 남자팀은 전명규파(한체대) 김기훈 코치가 맡게 되고, 

여자팀은 비전명규파(비한체대)김소희, 최광복 코치가 맡게된다.

김기훈 코치는 안현수를 발굴하여 키운 코치로써 안현수에게만 비법을 전수하는 등.. 

다른 남자 선수들과 차별하였고 이로인해 안현수 vs 비안현수파가 생기게 된다



2002년 10월 - 2003년 06월 남자 - 김기훈 여자 - 이준호

2003년 06월 - 2004년 10월 남자 - 김기훈 여자 - 김소희, 최광복



2004년 김기훈 코치의 스케이트 날 구입 강요사건이 터지면서 사퇴하게 되고 비전명규파(비한체대) 윤재명 감독이 

남자팀을 맡게된다. 남,여팀 모두 비전명규파(비한체대) 코치&감독이 맡게 되는가 싶었지만 바로 다음날 여자팀에서 

구타파문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전명규 감독의 제자이자 맏언니였던 최은경 선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구타사건을 폭로하고 

이로인해 비전명규파(비한체대)김소희, 최광복 코치가 물러나고 전명규파(한체대) 박세우, 전재수 코치가 여자팀을 맡게된다. 

2005년 1월 유니버시아드에서 선수들간의 구타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남자팀을 맡고 있던 비전명규파(비한체대) 윤재명 감독이 물러나게 되고 전명규파(한체대) 김기훈 코치가 

재부임하게 된다. 이로써 남자팀 여자팀 모두 전명규파(한체대)가 맡게 된다.



2004년 10월 - 2004년 11월 남자 - 윤재명 여자 - 김소희, 최광복

2004년 11월 - 2005년 01월 남자 - 윤재명 여자 - 박세우, 전재수

2005년 01월 - 2005년 04월 남자 - 김기훈 여자 - 박세우, 전재수




비전명규파(비한체대) 선수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선수만 편애하고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코치 밑에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며 선수촌 입촌을 거부한다. 이를 계기로 전명규파(한체대) 김기훈 코치는 사임을 하게 되고 

박세우 코치가 남자팀을 맡는다. 2005년 7월 올림픽을 앞두고 감독이 필요했기에 빙상연맹은 윤재명 감독을 다시 기용하려 했으나 

안현수, 최은경, 강윤미 선수 그리고 박세우, 전재수 코치가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입장을 표명한다. 

이를 이유로 빙상연맹은 전재수 코치에게 퇴진을 요구하였고 전재수 코치는 해임된다.

안현수, 최은경, 강윤미 선수 그리고 박세우 코치는 전재수 코치 해임에 반발하여 전지훈련을 거부하게 되었고..

남자팀 코치는 비전명규파(비한체대) 송재근 코치가 맡게된다.

이때부터 안현수 선수는 남자팀이 아닌 전명규파(한체대) 박세우 코치가 있는 여자팀과 함께 훈련을 받게 된다. 

2005년 11월 쇼트트랙월드컵에서 박세우 코치는 중국에게 져도 좋으니 진선유를 막으라는 명령을 하게 되고 선수들은 

이를 실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실행한 선수 중 한명인 변천사 선수는 회의를 느끼고 이후 남자팀으로 옮겨서 훈련을 하게 된다.




2005년 04월 - 2005년 07월 남자 - 박세우 여자 - 전재수

2005년 07월 ~          남자 - 송재구 여자 - 박세우




2006년 2월 토리노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얻지만 같은 파벌의 선수들끼리만 

축하해 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보여지면서 수면위로 오르게 된다.

2006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 당시에는 비행기 좌석, 숙소까지 변경할 정도로 골이 깊어 졌으며 경기중 한국 선수들끼리 

대놓고 경쟁하는 것이 화면에 비춰지기도 했다. 안현수선수 아버지가 입국장에서 빙상연맹 부회장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뉴스에 담기면서 이슈로 떠올랐으며, 경기중 의도적인 안현수 선수 방해 및 견제 그리고 왕따 문제가 골자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준비되었지만 흐지부지 넘어갔으며, 2007년 안현수 선수가 한체대 졸업 후 한체대 대학원 진학이 아닌 

성남시청과 계약을 하면서 한체대파에게도 견제 및 방해를 받게된다.


2010년 이정수 선수가 벤쿠버올림픽 1500m 금메달을 따던 날 전재목 코치는 이정수 선수에게 대표선수 선발때 

도움을 받았으니 너도 곽윤기 선수에게 1000m를 양보하거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양보하라는 강압을 하고 이정수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곽윤기 선수에게 양보하는 조건으로 벤쿠버올림픽 1000m 출전, 금메달을 목에 걸게된다.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이후 안현수 선수 아버지는 안현수 선수 팬카페에 곽윤기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게 된 것에 대해

 의문글을 올리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선수, 코치 기자회견이 열렸고 결과적으로 대한체육회는 전재목 코치 영구제명, 

이정수 선수와 곽윤기 선수는 스포츠쉽을 이유로 6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하게된다.


2010년 12월 안현수 선수 소속이었던 성남시청은 재장악화를 이유로 팀을 해체한다. 

2008년 무릅부상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다른 지역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없었으며, 빙상계에서는 

안현수를 퇴물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의 나라에서 귀화 제의가 있었지만 우선 국가대표로 뽑히면 

국내 어느 팀이든 연락이 올것이라 생각하고 개인 신분으로 국대선발전에 도전했으나 선발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러시아로 귀화를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는 아쉽고, 빙상연맹이 빙신연맹인건 맞지만 안현수 선수는 빙상연맹 파벌의 무조건적인 

피해자만은 아닙니다. 맞지만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초반에는 파벌로 인해 이득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부상 이후 2011년 러시아에 귀화할때까지 국내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분위기를 보면 마치 안현수 선수가 마치 무조건적인 피해자, 영웅인듯 미화하곤 하는데 ..그런건 아니더군요

안현수 선수의 사건들은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로 인해 수면밖으로 나와 매스컴을 타면서 알려지긴 했지만

알려지지 않고 피해본 선수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sns 찾아가서 욕하는 선수중에서도

분명히 피해를 본 선수가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런 골이 깊은 파벌에서 무조건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을겁니다.